디자이너 Anthony Hobday가 품질에 관한 “노트”를 썼습니다. 정돈된 논문이 아니라 커리어 내내 머릿속을 맴돈 명제들을 늘어놓은 글인데요, 그 한복판에 불편한 주장이 하나 박혀 있고요. 규모가 커지면 품질은 어려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끝내 불가능해진다. Hobday는 이 말을 하면서 동시에 자기가 틀렸으면 좋겠다고 적어둡니다. 이 어긋남이 글 전체의 색깔입니다.
품질은 문제가 없는 상태다
Hobday가 내놓은 정의는 한 줄입니다. “품질은 문제의 부재다”(The absence of problems). 충분히 테스트하고 전문가 100명이 달라붙어도 문제를 못 찾으면 그건 완벽에 가깝습니다. 완벽 자체는 닿을 수 없는 스펙트럼의 끝이고, 업계가 최고라 인정하는 소프트웨어에도 눈에 띄는 문제는 있죠. 현실은 그쪽으로 얼마나 다가가느냐의 싸움인데요, 가까워질수록 힘들어집니다. 품질이 걸린 곳이면 어디서나 보이는 수확 체감이에요.
품질은 진공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이 글은 그걸 능력(ability)과 의지(appetite)의 곱으로 봅니다. 고품질을 만들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조직이 그걸 만들도록 허락하는가. Hobday의 관찰은 단호합니다. 조직이 고품질을 낸 경우의 ~100%는 리더가 그걸 원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위에서 원하지 않으면 아래에서 아무리 애써도 훨씬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이 무력한 건 아니고요. 아무리 경직된 디자인 시스템 안에서도 더 나은 선택과 더 못한 선택은 늘 갈린다는 단서를, 저자는 잊지 않고 달아둡니다.
”특정 규모를 넘으면 고품질은 불가능하다”
여기가 글의 심장입니다. Hobday는 이렇게 씁니다.
“특정 규모를 넘으면 고품질은 불가능하다. 어떤 조직은 고품질 소프트웨어를 만들 능력 자체가 없다.”
“High quality is impossible past a certain point of scale. Some organisations are incapable of making high quality software.”
중요한 건 그가 이걸 불평으로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건 풀 문제가 아니다. 풀 수 없다. 소프트웨어의 거의 모든 것이 그렇듯 트레이드오프다”(It cannot be solved. It’s a trade-off, like almost everything else in software). 규모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거죠. 왜 그런지를 Hobday는 세 갈래로 쪼갭니다.
- 관계가 관리 범위를 벗어납니다 — 좋은 인터페이스는 요소들 사이 관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요소가 늘면 관계는 그보다 빠르게, 기하급수로 늘어나죠. 사람도 똑같아서 인원이 늘수록 서로의 관계가 번역 과정에서 새고, 목표가 어긋납니다. 프로세스로 틀어막을 수는 있지만 결국 디자인보다 프로세스에 시간을 더 쓰게 되고요.
- 무심한 사람이 섞입니다 — 많이 뽑을수록 좋은 디자인을 충분히 아끼지 않는 사람이 들어올 확률이 늡니다. 좋은 디자인은 손댈 수 있는 모두가 — 개발자·디자이너·PM, 종종 CEO까지 — 가치를 공유해야 나오니까요.
- 상업적 목표가 디자인을 갉습니다 — 어떤 숫자를 올려야 하면 인터페이스가 나빠지곤 합니다. 광고를 더 붙이면 수익은 나지만 화면은 망가지죠. 요청받은 기능을 더할 때마다 인터페이스는 조금씩 더 나빠집니다.
한 명이 인터페이스 전체를 머리에 담을 수 있을 때 품질이 가장 쉽다는 게 이 글의 첫 번째 믿음입니다. 규모는 바로 그 조건을 부수고요.
서른 몇 명이 같은 말을 한다
Hobday는 자기 주장을 혼자 밀지 않습니다. 스트라이프·피그마·트위터·인스타그램·구글을 거친 창업자와 디자이너 서른 몇 명의 말을 그러모아 하나의 패턴으로 세웁니다. 작은 팀이 큰 조직보다 일관되게 높은 품질을 낸다는 패턴이죠.
Steve Ruiz는 “안타깝게도 취향은 확장되지 않는다”(unfortunately taste doesn’t scale)고 잘라 말하고, Bob Baxley는 한 발 더 나갑니다. “창의성은 무엇도 확장되지 않는다 — 애초에 그런 적이 없다. 확장되는 건 생산이지 창의가 아니다”(Nothing about creativity scales—and it never has. Production scales. Creativity doesn’t). Jordan Singer는 “디테일에 쏟는 주의는 팀 크기에 반비례한다”고 했고요. Adam Michela는 수백 개 스타트업을 도운 경험에서 품질의 스윗스팟을 ~30명(엔지니어 5~10명, 디자이너 2명)으로 못 박습니다.
스트라이프의 Patrick McKenzie는 회사가 품질 문화를 애써 가꾸고도 “그중 무엇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의 품질 수준에 적극적으로 불만이다”라고 마무리했습니다. Packy McCormick은 이 궤적을 마법에 빗대는데요. 스타트업은 기술 부채 없이 마법을 부리고, 그 마법을 돈으로 바꾸고, 끝내 막대한 이익은 내지만 더는 마법을 못 부리는 “덩치 큰 머글 회사”가 됩니다. 1995년 Steve Jobs가 남긴 진단도 같은 뼈대예요. 독점에 이르면 회사를 더 키우는 건 제품 사람이 아니라 영업·마케팅 사람이 되고, 제품 사람은 의사결정에서 밀려나며, 회사는 좋은 제품이 뭔지 잊습니다.
다만 저자는 반대편에 양보 한 문장을 남깁니다. 품질은 필수가 아니라 이상(ideal)이라는 겁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조직 다수가 품질을 우선하지 않고, 그래도 굴러가죠. 품질이 없어서 망하는 게 아니라 품질에 매달리다 다른 걸 놓쳐 망하는 회사도 있고요.
규모와 무관하게 개인이 손대는 디테일
규모가 다 정한다는 얘기로 글을 닫으면 반쪽입니다. 저자가 글 끝에 붙인 “인터페이스 삶의 질 개선” 20가지는 규모와 무관하게 개인이 손댈 수 있는 디테일 목록인데요. 중첩 메뉴에서 마우스가 경계를 살짝 벗어나도 안 닫히게 하는 넉넉한 경로, 단축키에서 엉뚱한 키를 먼저 떼도 조합이 취소되지 않게 주는 짧은 유예 시간(코요테 타임), 화면이 바뀌어도 같은 요소가 자리를 지키는 오브젝트 퍼머넌스. 이런 건 로드맵 회의가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손끝에서 나옵니다. Hobday가 개인이 낼 수 있는 품질의 몫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 있고요.
그래서 회사들이 만든 장치
규모의 문제를 인정한 곳들은 품질을 우연에 맡기지 않고 구조로 박아 넣습니다. Automattic은 C-레벨에 최고품질책임자를 뒀고, GitLab은 신규 기능은 손 안 대고 자잘한 사용성 결함만 잡는 “UX Paper Cuts” 팀을 굴립니다. Linear는 연말 한 달을 광내기(polishing) 시즌으로 비워 기능 개발을 멈추고, 아침에 배정된 버그가 있으면 다른 무엇보다 먼저 처리하며, 매주 각자 개선한 걸 하나씩 보여주는 “품질 수요일”을 돌리고요. Shopify는 admin을 가로로 훑는 품질 팀을, 스트라이프는 “Head of Craft” 자리를, Zed는 연 2회 기능을 멈추는 “품질 주간”을 뒀습니다.
Hobday가 “반증하고 싶은 믿음”이라며 38개를 늘어놓은 게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규모가 품질을 죽인다는 건 그가 자랑스레 내놓는 결론이 아니라, 참이 아니길 바라며 붙들고 있는 명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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